<가천길대학보> 6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지금은 '가천의과대학'이 된 '가천길대학'에 시간 강사로 강의를 했던 적이 있는데 수강생 중 학보사 기자가 청탁을 해서 썼던 글입니다. 1998년 가을 경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발행일을 모르겠네요. 스크랩 해 두지 않은 불철저함을 반성하였습니다. ㅜㅜ. (2011.7.10. 티스토리로 옮김)
'수박 겉핥기'란 속담이 있다. 내용은 모르면서 겉만 건드린다는 뜻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속담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이 속담만큼 요즘 학생들의 독서법(讀書法)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책을 읽기는 읽는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열심히 읽는다. 기특한 생각이 들어 가까이 가서보면 거의가 만화책을 읽고 있다.
반면에 정작 열을 내어 읽어야 할 문학 작품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는다. 서점에 가보면 '○○가 읽어야 할 명작 ○편'식의 제목을 가진 그렇고 그런 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세계 명작, 한국 명작, 고전 문학 등 분야별로 잘 정리된(?) 이런 책들은 수능 대비, 논술 대비, 수행평가 대비 등의 명목으로 종류와 수량이 갈수록 불어나면서 수험생을 위한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베스트 셀러 집계 대상에서 빠져 있어서 그렇지, 집계 대상에 넣는다면 단숨에 1위를 차지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책들에는 작가, 인물, 줄거리 소개는 물론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대목까지 곁들인 자상한 해설이 실려 있다. 이런 종류의 친절한 해설서 덕분인지 요즘 학생들은 명작이라 불리는 웬만한 작품에 대해서는 비평적 논평까지 곁들이며 좔좔 설명할 줄 안다.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기가 막히게 발표했던 학생이 사소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었다. '무소의 뿔'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물음이었는데 엉뚱한 얘기만 하면서 횡설수설 하였다. 알고보니 이 학생은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고, 인터넷 등에서 검색한 자료를 가지고 발표문을 꾸몄던 것이다. 소설책의 속지에 큼직하게 써있던 불교경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그 학생의 독서법은 요즈음 만연된 '수박 겉핥기'식의 그릇된 독서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현대 소설 작품을 읽는 것도 이와 같은 지경이니, 고전 작품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나라 사람 치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홍길동전>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의 원전(原典)을 읽은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만화책이나 동화책, 줄거리 요약 해설집, 아니면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등을 통해 작품의 스토리 라인(Story line)만 파악한 것일 터인데도, 누구도 이 작품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대학 입학 후 첫 여름 방학 때 <열녀춘향수절가>를 읽으며 무릎을 쳤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때 읽은 것은 완판 방각본이었는데, 그 생동감 넘치는 표현, 재치와 웃음이 가득한 인물상, 정서적 공감(共感)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를 접하며 우리 고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었다. 필자가 그랬으니 요즘 학생들도 목판본, 필사본 등의 원전을 구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하면야 좋겠지만 사실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오히려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 들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시중에는 우리 고전을 현대어 표기로 바꾸거나 어려운 어휘를 자상하게 설명해 둔 책이 적지 않으니, 이러한 책을 가려 읽는다면 고전 작품의 원전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을 것이다.
문학의 의미와 의의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라도 설명하자면 '언어를 통한, 삶에 대한 미적 추구'라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미(美)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며, 언어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의 효용적 가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한다. 읽지 않고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조차 없다. 정보화의 물결이 거세고, 첨단 과학의 발달이 눈부시다고 하더라도 문학의 의의는 쉽게 사장(死藏)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실질적 향유 방법은 달라질망정 문학의 존재 의의는 더욱 강조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장은 문학작품(소설)과 그것을 영화화한 작품을 대비해 보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안성기의 연기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영원한 제국>의 정조(正祖)의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하기 힘들며, 김명곤이 아무리 애를 써봐도 <태백산맥>의 염상진의 이미지를 제대로 그려내기 힘들다. 데미 무어가 <주홍글씨>를 망치고, 숀 코너리가 <장미의 이름>을 수사극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은 인간의 상상력(想像力)을 통해 실현화(realization)되지만, 영화의 주된 실현화 방식이 기대고 있는 시각적 효과는 오히려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실현화 방식의 차이로 인해 문학과 영화는 고유의 영역을 지켜가며 서로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문학의 존재 의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서는 가장 손쉬운 세상 읽기의 방법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의 원전을 읽는 올바른 '독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적지 않은 인내심과 노력이 요구되며 양서(良書)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한다면, 투자한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조급함을 누를 수 있는 여유,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 세상을 읽는 식견(識見)을 두루 갖춘 진정한 지성인(知性人)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깊어 간다. '수박 겉핥기'가 아니고 그 단맛과 깊은 속맛까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독서 삼매(三昧)에 빠져 이 아름다운 가을을 보내는 가천인(嘉泉人)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