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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지우고 부담없이 몰입할 수 있는 한 순간 - <Eraser>를 보고
    Creative/감상문 1996. 8. 1. 02:54

    LG-EDS 사보 '가치창조'(1996.8.)에 실렸던 글입니다. <스피시즈>에 관련 글이 괜찮다고 청탁받은 글인데, 시간에 쫓겨 제대로 못 쓴 것 같아 아쉽습니다. (2011.7.10. 티스토리로 이동)



    아놀드 슈왈제네거 하면 우리는 <터미네이터(Terminator)>를 연상하게 된다. 부여된 임무 수행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전사(戰士)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그를 최고의 액션 스타로 만든 출세작인 동시에 그의 캐릭터를 고정시켜 버리는 역할도 했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벌어진 액션 대작의 흥행 경쟁 속에서 우리는 그의 선이 굵고 호쾌한 액션 연기를 접할 수 있다. <트루 라이즈(True Lies)> 이후 2년만에 선보인 <이레이져(Eraser)>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무언가 남기를 기대한다든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기대한다면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푹 빠져들어 모든 걸 잊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원하다면 꽤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사실 아놀드에게서 다양한 캐릭터나 성격 연기 등을 원하다면 그건 무리가 아닐까 한다. 아니 우리는 그의 변신을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체구와 무표정한 얼굴, 마치 발화 능력을 갖춘 기계를 연상케하는 대사 연기 등의 면모는 딴 마음 먹지않고 우직하게 맡겨진 임무에나 충실한 역할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의 출연작 중 내면 연기를 소화해 낸 영화가 없지는 않다. 현실과 모사의 뒤섞임 속에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정체성을 찾기위해 몸부림치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폴 버호벤의 <토탈리콜>이 그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My misson is to protect you”, “I'll be back”, “Trust me” 등의 말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든든하며 안심이 되겠는가. 먹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고, 다쳐도 아픔을 모르는 철저한 임무 수행자이던 사이보그 터미네이터로서의 그는, <트루라이즈>에서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불사조같은 역할을 해 낸다. 그러나 이레이져로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상처입기도 하고, 적에게 속아 수면제를 먹고 잠들기도 하고...(물론 전작 <터미네이터> 보다 인간적이긴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는 <다이하드> 시리즈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연민이나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스스로의 힘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그를 만난 여주인공의 “늦었군요”라는 대사에서 극대화된다. 더이상 기계 인간도 아니고, 만화적 상상력 속의 불사조도 아닌 죽음의 공포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나타나는 것이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증인의 신변을 보호하고, 나아가 기존 기록을 모두 지워 새 삶을 살게 도와주는 것)을 수행하는 연방 수사국 요원으로 등장한 아놀드는 철저한 임무 수행으로 인해 이레이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바네사 윌리엄스는 무기 제조 회사의 중역으로 등장하여 내부 비리를 파헤치다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고 존 크루거(아놀드 분)의 보호를 받게 된다. 국방부 차관이 개입된 신무기의 밀매에는 존의 동료마저 개입되어 존과 리(바네사 윌림어스 분)는 극도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은 EM Gun이라는 신무기를 접하고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레이저 투시로 인해 은폐물은 물론 표적의 심장까지 꿰뚫어 보고 알루미늄 탄환을 무지막지하게 쏘아대는 종래 볼 수 없는 신형 무기이기 때문이며, 이 무기가 실용화된 전장을 상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아마 터미네이터가 등장했어도 맥을 못추었을 놀라운 신무기 앞에서 관객은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면의 전문가인 존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며 증인을 보호하여 탈출시킨다. 비록 엄청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지만 관객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의 건장한 팔뚝 속은 웬지 정교하고 강한 기계로 채워져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우리의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음 장면에선 큰 상처들이 씻은 듯이 나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후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의 연속이다. 제트기에서 뛰어내려 집어던진 낙하산을 쫓아가는 장면은 영화 <고공침투> 보다 오히려 실감나고 아슬아슬하게 묘사된다. 또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숱한 악어들이 등장하여 상황을 종료시켜 준다.

    쫓기던 주인공들이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야수의 도움을 받는 장면은 흔한 설정이다. 가까운 예로 <폴리스 스토리 4>에서 식인 상어와 악당에게 쫓기면서도 희극적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할리우드식 영화문법에다 성룡 특유의 유머를 곁들여 극대화시킨 예이다.

    결말의 장은 무기 밀매단을 쫓는 영화의 전형을 벗어남 없이 부두로 설정되어 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존은 적의 EM Gun을 2정이나 확보하여 적을 쳐부순다. 무거운 EM Gun을 양손에 한 정씩 거뜬하게 들고 난사하는 순간은 6년만에 돌아온 터미네이터를 만나는 순간이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시시하게 끝나는 듯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반역죄로 기소된 국방부 차관과 연방수사요원은 권력의 힘과 뻔뻔스럼으로 법의 심판을 빠져 나오려 하고, 최대 걸림돌인 증인을 제거하려 한다. 이들의 뜻대로 되는 듯 증인이 올라 탄 차는 시동과 함께 폭발을 일으킨다. 의기양양한 범죄인들.

    그러나 여기에 약간의 파격이 우리를 후련하게 된다. 법은 권력의 편이라는 점을 은연 중에 내비치며 이레이저는 스스로를 지우고, 반역죄인들을 지워 버린다. 물론 전자는 기록 삭제를 후자는 죽음을 의미한다. <JFK>나 <긴급명령> 등 고발성 강한 작품들이 재판이나 청문회 등으로 마무리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이러한 결말이 가능한 것은 주인공들이 Erased 되었기에 가능하다. 누구나 증인들은 폭사당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법에게 모든 해결을 떠 넘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스스로 만든 ‘법’이라는 제도에 오히려 인간 자신이 얽매어있는 아이러니를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법은 100% 정당하게 집행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돌아온 액션 영웅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영화, 할리우드식 영화 문법에 충실한 액션 영화를 보고나서 ‘법’이란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것 역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영화를 보며 새로운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필자가 지닌, 아니 우리 인간이 지닌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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