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DS 사보 '가치창조'(1996.7.)에 실렸던 글입니다. 15년 전 글이라 허접하기 짝이 없네요...ㅜㅜ 그래도, '출간'된 최초의 글이었다는 점에서 소중하기도 합니다. (2011.7.10. 티스토리로 이동)
이 작품의 설정을 찬찬히 살펴 보면 우주 진출의 야망을 품은 지구인이, 자신들을 숙주로 기생하던 외계인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던 모습이 생생한 <에이리언(Alien)> 시리즈의 배경 설정을 지구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시종 숨막히는 분위기와 위기감 등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극적 재미를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지겹도록 밀려오는 적들과 사투를 벌이던 모습과, 여주인공의 통쾌한 액션, 강한 캐릭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피시즈>는 외계인의 청순한 미모, 추적팀과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또 외계인과의 사투를 그린 대부분의 영화가 결국 '지구인 만세!'로 마무리 되는 반면, 이 작품은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채 마무리 되어 있다는 점, 곳곳에 숨겨둔 감독의 비판적 시각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더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피시즈'란 제목에서 암시하듯, 외계인은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인과의 '종'을 넘어선 '교배'-유전자 조작-를 통해 1차적인 변종을 산출하고, 자기 종의 우월성-이 때의 우월성이란 육식 동물이 갖는 무력적인 면의 우월함이다-을 토대로 지구의 지배권을 탈취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음모는 무소불위의 위력을 가진 첨단 유전 공학을 미끼로 외계인이 꾸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종'의 창출은 '단지' 지구인들을 '실험' 대상으로 한 결과물일 뿐인 것이다. 외계인이 이러한 목표를 위해 택한 것은 여성(암컷) 숙주였다. 작품 내에서 지구인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하며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성을 여성으로 결정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여성의 종족 보존 본능이 남성 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점을 간과한 언사로서, 여기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위치에 관한 편견을 '비꼬는' 의도가 스며들어 있다.
엄청난 성장력을 가진 외계인 변종-지구인 난자와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이 여자의 이름은 '씰'이다-은 가임능력과 함께 눈부신 미모를 갖추고, 자신을 임신시켜 줄 대상을 찾아나서며, 이 과정에서 끔찍한 살인을 예사롭게 해치운다. 다방면의 전문가로 구성된 추적팀은 늘 뒤늦게 그 뒤를 쫓으며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을 이어간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적팀에는 생물학 교수, 인류학 교수를 비롯해 놀라운 감응력(초능력)을 소유한 인물과 전문 인간 사냥꾼들이 끼어 있다. 두 교수들 보다는 이들이 중심 활동을 하는데,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종의 창조까지 해내는 첨단 과학을 가진 지구인이, 그 뒷처리를 위해 동원하는 것은 가장 '비과학적'인 인물과 방법이라는 사실은 인류의 성장이 불균형의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이는 꽤나 중요한 지적이기도 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에만 폭력적이던 씰은 점차 영악하고 난폭하며 목적(2세의 임신)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를 갖게 된다. 온순하던 씰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저 본성은 인간의 것인가, 외계인의 그것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포악하게 변모해가는 씰의 모습은, 목적을 위해 쉽게 변해가는 '인간성'에 대한 조소이며, 나아가 '과학'이나 '복지'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갖가지 인류의 이기심의 결과물들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미모로 감춘 폭력성. 섹스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들이 다투어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탐구이며 영원한 흥미거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피시즈에 나타나는 흥미소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광기와 어우러진 성적 매력이었다면, <스피시즈>에 나타난 것은 폭력성과 어우러졌으되 종족보존이라는 엄숙한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숭고미를 띠며 쾌락만을 좇는 성적 매력과는 변별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추적팀 일원과의 관계를 통해 임신한 씰은 이제 생존을 위해 도피를 한다. (추적팀의 무능함은 이러한 설정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하수구에서의 긴박한 추격전 끝에 씰과 그 새끼는 '처치'된다. 인간 사냥꾼에 의해. 현대 과학의 발달을 못 쫓아가는 주변 분야와의 불균형성, 괴리가 다시한번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쫓고 쫓기는 영화에서 늘 그러하듯, <스피시즈>도 예외없이 마지막 결전의 무대는 하수구가 된다. 하수구는 본거지로서, 때론 도피처로, 아니면 지름길, 통로 등으로 설정되어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다이하드>, <도망자>, <엘리게이터> 등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왜 이처럼 하수구는 추격전의 극한이나 탈주처의 대명사가 되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지상의 사람들에게 하수구는 모든 오염된 것들이 지나는 통로일 뿐이지만 도망자들에게는 좋은 은신처가 되어준다. 하수구에서 연상되는 부패와 오염, 암흑 등이 이를 도와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수구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연결통로'로서의 의미이다. 하수구는 거미줄 처럼, 아니 실핏줄 처럼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탈주로의 구실도 중요하지만, 실은 어디로든 진출할 수 있다는 데 무엇보다 큰 기능과 의미가 있다.
<스피시즈>의 마지막이 하수구에 떨어진 씰의 몸체 일부를 쥐가 줏어먹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하수구가 갖는 이러한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지하 하수구를 타고 어마어마하게 번식될 외계의 '종(species)'이 그 무서운 육식성을 드러낼 속편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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