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감상문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또랑찍사 2001. 11. 1. 18:51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추리 소설 읽기의 '재미'와 중세 종교사에 대한 맥락 짚어가기의 '흥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탁월한 작품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남긴 강한 인상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플롯을 극단적으로 해체해 나간다거나, 서술자를 변형시키는 등 갖가지 실험적 소설이 등장하는 요즘에, 『장미의 이름』과 같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소설 본연의 특성을 온전하게 감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장미의 이름』이 지닌 재미의 첫 번째 원천은 '추리 소설' 기법을 취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꼬리를 무는 살인 사건, 게다가 이 살인 사건이 <묵시록>의 예언대로 이뤄진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여기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하나 하나 의문의 베일을 벗겨나가는 과정이 겹쳐지면서 작품의 재미는 한껏 증폭된다. 대개의 추리 소설이 사건의 '결과'부터 제시하고, 그 과정과 동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하는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기에, 시간율과 인과율을 자유롭게 조직하고 입체화하여 플롯을 축조해 나가는 소설 장르의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장미의 이름』이 재미있다는 것은 이러한 '추리 소설'의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목차는 1일차부터 7일차까지, 순차적인 날짜순으로 되어있지만, 구체적 내용에서는 주인공의 수사 과정과 추리 과정을 바탕으로, 오히려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이 지닌 재미의 두 번째 원천은 등장인물의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중세의 수도사이면서 전혀 중세의 인물답지 않은 윌리엄 수도사의 캐릭터, 종교보다는 자연과학의 힘을 믿고, 막힘 없이 신의 존재 유무를 거론하는 그의 캐릭터는 이 작품을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다.

기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트 에코의 면모는 윌리엄 수도사의 캐릭터에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비언어적 기호를 통해 사물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장자끄 아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장미의 이름』이 원작의 작품성을 제대로 살려내지는 못했더라도 완전 실패로 평가되지 않는 것은, 원작의 캐릭터를 개성적으로 소화해 낸 숀 코너리(윌리엄 수도사 역)의 탁월한 연기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화된 『장미의 이름』은 작품의 스토리 라인을 좇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원작이 지닌 무게를 제대로 재현해 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점은 『장미의 이름』이 지닌 서사적 '재미'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 즉 종교적·학적 '흥미'와 연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장미의 이름』이 세계 40여 개의 국어로 번역되어 폭넓게 읽힌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작품의 재미만으로는 설명해 내기 힘들다. 이는 중세 종교사를 꿰뚫고 있는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그것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작품화한 형상화 능력이 상승작용을 일으켰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위대한 저작인 『시학(Poetics)』이 전편(前篇)만 전하는 이유에 대해, 후편(後篇)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광적 교조주의에 의한 것이라는 작자의 상상력은 기발하며 새롭다. 실제 『시학』에는 "후편을 참조하라"는 주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후편의 존재 가능성은 진작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이를 종교적 도그마의 문제와 연계시킨 작가의 상상력은 충격으로서 다가온다. 결국 작가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저변에 깔아둔 채, 중세 종교적 논란거리들을 차근차근 짚어 본 것이며,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무거운 주제의식을 추리소설 기법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재미와 문제의식을 두루 갖춘 역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작품은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통해 열려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지닌 상징적 의미의 해석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라는 점을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의 연원이 된 다음의 구절에서 확인해 보는 것은, 우리 모두 진지한 독자의 위치에 섰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2001.11.1 성균관대학교 웹진의 '이 한 권의 책'에 실었던 글입니다. (2011.07.12. 티스토리로 옮김)